작성일 : 13-04-2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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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Daniel
 조회 : 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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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 [2565] |
작년에 미국 연수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수님과 행정업무를 처리하다가 복잡한 머리도 식히고 바람도 쐴겸 잠깐 외출해서
학교 근처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커피 두잔을 카운터에 올리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저를 보고 "소방관이냐?"고 묻습니다.
실습중에 입는 티를 입고 있었는데 소방관 마크가 눈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한국 소방관인데 의대에서 연수중이다'했더니 어쨌든 소방관이면 돈은 안받는답니다.
Hero(영웅)한테 커피 살 기회를 줘서 고맙다며 사람좋은 웃음으로 인사합니다.
곁에 있던 교수님께 물었습니다.
"이런 일이 흔하냐, 저 직원만 그러냐. 한국에선 경험해보지 못했다."
교수님은 미국에서는 소방관이 영웅 대접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익숙해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미스터 김, 한국에서는 소방관이 천대받는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바뀔거에요.
미국 시민들은 약아서 그런거에요. 자신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누구인지 확실하게 계산하거든요.
소방관들을 영웅대접해주고 자신들에게 위기가 닥치면 목숨걸고 구해줘라. 압박하는 거지요.
9.11테러의 희생자에 수백 명의 소방관들이 포함된 것을 보고 시민들은 깨달은거예요.
언제라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 순간 자신들을 지켜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소방관이 그들이다."
그 후에도 여행중에 만나는 이들이나 일반 시민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나는 소방관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눈빛이 바뀌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음식점에서 가격을 깍아주거나 서비스 메뉴를 제공하고
처음 만난 사이에도 저를 대접해주고 호의를 베풀더군요.
과연 미국에서 소방관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 미국 소방관은 한국보다 자질이 뛰어난가, 하면 그건 아니였습니다.
실습기간중에 만난 5개 소방서의 소방관들은 대부분 고졸에 공채 합격후 약간의 훈련을 받은 게 전부.
현지 교수들도 인정하듯이 기본적인 자질이나 이해력, 현장적응력과 대처능력은 한국소방관이 더 뛰어났습니다.
다만 체격을 비롯한 체력조건은 미국 소방관이 한 수 위였습니다. 물론 각종 첨단장비와 시스템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요.
결국 미국 소방관은 스스로 갖춘 것이 아닌 시민이 만들어내는 영웅이였습니다.
평범한 청년이 일단 소방조직에 들어오고 각종 훈련과 현장 경험을 쌓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가 퍼부어지면 그 존재 자체가 바뀌어 버립니다.
부러웠습니다. 출동건수나 현장의 강도, 소방관 순직율과 부상율 등등
어느것을 비교해도 한국 소방관이 훨씬 더 고생하고 희생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안타까웠습니다. 왜 한국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존재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할까.
한 해 평균 6명 이상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전체 3분의 1의 소방관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으나 치료는 없고,
소방병원도 없으며, 순직이나 부상 후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사실 소방관이나 119구급대가 필요한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입니다.
평소에 건강검진 철저히 받고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과 약 먹어가며 체력관리하는 "좀 사는 사람들"은
위험이나 위기 상황에 잘 노출되지 않습니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의 구급 출동은 210만 건이였습니다. 실제 병원 이송은 150만 건 정도.
제가 근무하는 센터는 한달에 400~450건 정도 출동합니다. 다양한 환자들을 겪어보았지만
혼자 있다가 다친 사람들, 교통사고 환자, 뇌졸증이나 심장관련 환자 등
생명의 불꽃이 꺼졌다가 우리의 도움으로 되살아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내가 소방관이어서, 적절한 시간 내에 도착해서, 합당한 처치가 이루어지고 병원으로 옮길 수 있어 다행이다.
재작년까지는 화재진압을 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대에 주로 출동을 나갔는데
텅 빈 도로를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소방차에서 공기호흡기를 차고 '후욱 후욱' 내 숨소리와
'쿵쾅 쿵쾅' 내 심장소리만 가득한 그 공간에서 늘 기도했습니다.
겁내지 않게 해달라고,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혹 나를 희생하고 누군가를 살려야하면 그만큼 가치있는 사람이였으면 좋겠다고.
몇번인가 불 속에 갇힌 사람구한다고 달려들었다가 허리 나가고 무릎 꺾어지고 그랬습니다.
평소에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자부하지만 일단 불을 보고, 그 화염속에 사람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이곤 했습니다. 그게 본능인지 직업의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랬습니다.
오늘 아고라에 들어와보니 소방관 벌점제에 관한 글이 일면이더군요.
이 법이 시행된다면 징계받고 파면될 소방관들이 많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동료, 선배들 다 그렇습니다.
진작에 시행됐었다면 저두 이글을 쓰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징계와 파면이라는 채찍을 휘둘러 소방관의 희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위축된 소방활동은 시민의 희생으로 되돌아올 부메랑입니다.
2012년 기준으로 소방관 한 명이 담당하는 국민 수는 1,319명 입니다.
한 명의 소방관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1,319명의 시민이 피해를 봐야 합니다.
현장에서 활동할 때마다 각종 지침과 규칙을 떠올려야하고 징계를 걱정하며 화재진압, 구급, 구조 활동을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이 받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미쿡 시민들처럼 약아지면 좋겠습니다. 자신들의 몫을 챙기고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을
잘 골라서 키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
잘못된 정책으로 돋아나는 싹마저 잘라버리는 우울한 시대가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40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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